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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석명

소소한 행복 2019. 3. 9. 19:44

論語석명

 

그런데 이 󰡔論語󰡕의 제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후한의 鄭玄,

대답하여 진술하는 것을 다 라고 한다. 이 책에 실려있는 것은 다 仲尼가 제자 및 당시 사람에게 응답한 말이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래에 있는 것은, 반드시 論撰을 거친 후에 그것들을 실어서 망령되고 그릇된 것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다.” 라고 했다.

 

나라의 皇侃(488-545)󰡔論語義疏󰡕의 서문에서,

 

자의 풀이에는, 첫째 음을 취하여 이라고 하는 것과, 둘째 글자만을 취하여 으로 보는 것, 셋째 이 모두 같은 뜻이라는 것의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의 경우는 다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먼저 의 뜻으로, 이 책이 사건과 뜻이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둘째는 의 뜻으로 만 가지 이치가 다 담겨 있다는 것이요, 셋째는 으로 고금을 경륜했다는 것이요, 넷째는 으로 온갖 뜻이 다 갖추어져 마치 수레바퀴처럼 원전함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다음으로 이라 풀이하는 것은, 문인들이 자세히 토론하여 기록했으므로 이라 했다는 주장이며,‘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나라와 中原지방의 음이 다르고 남쪽과 북쪽의 말이 다른데서 온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남쪽 사람들은 일을 한다(질서 있게 한다)’는 것을 일을 한다고 말하고, 북쪽 사람들은 일을 한다.(논의한다)’는 것을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음과 글자가 같지 않다 하더라도 뜻은 모두 같은 것이다.

자에 대해서는, ‘란 논란에 대하여 대답하여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詩經󰡕毛傳에서도 곧바로 말하는 것을 이라 하고 논란하는 것을 라 한다.” 하였다. 󰡔周禮󰡕鄭玄의 주에는 말하기를 시작하는 말을 이라 하고, 대답하여 설명하는 것을 라 한다.” 이 책의 내용이 이미 논란에 대하여 대답하여 설명하는 것이므로 으로 그 이름을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름하여 󰡔論語󰡕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상이 한대에서 육조시대에 이르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며, 당대의 陸德明󰡔論語音義󰡕, 송대 邢昺󰡔論語注疏󰡕 등이 이러한 해설을 따른다. 오늘날 󰡔論語󰡕라는 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漢書󰡕 「藝文志의 경우처럼 孔子 사후 그 언행을 제자들이 논의하여 편찬한 것이라는 의견과, 공문의 스승과 제자가 글뜻을 토론한 것이라고 하는 의견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元初何異孫󰡔論語問對󰡕에서, “이는 공문의 스승과 제자가 토론한 언어이다. 제자가 스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고, 스승이 제자의 물음에 대답한 것이 있고, 제자들 자신이 서로 문답한 것이 있고, 그때 사람들이 서로 얘기한 것이 있고, 신하가 임금의 물음에 대답한 것이 있고, 스승과 제자가 大夫의 물음에 대답한 것이 있는데, 모두 글뜻을 토론하는 방법이었으며, 그래서 이것을 󰡔論語󰡕라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후자의 견해를 밝혔다. 청대의 袁枚(1716-1797)󰡔小倉山房文集󰡕 「論語解에서 󰡔論語󰡕란 책은 모름지기 제명을 붙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란 의론의 뜻이며 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學而로부터 끝 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들과 의론한 말이라는 것이다.”라 하여, 하이손의 의견에 따랐으며, 趙翼(1727-1814)󰡔陔餘叢考󰡕에서 전국시대에서 한초에 이르는 사람들의 책에는 孔子의 남긴 말이나 지난 일들이 실려 있는 것이 매우 많으며, 󰡔論語󰡕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본시 이런 기록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의 제유들이 토론하여 찬정하고 비로소 이것을 󰡔論語󰡕라 한 것이다. ‘란 성인의 남긴 말을 뜻하며, ‘이란 제유들의 토론을 뜻한다.” 고 하여 󰡔漢書󰡕 「藝文志의 견해를 따랐다.

그런데 劉寶楠(1791-1855)󰡔論語正義󰡕를 보면 앞머리의 學而라는 편명의 해설에서는 邢昺이 소에서 제자들이 논찬했을 적에 󰡔論語󰡕로서 이 책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 말을 인용한 뒤에, 자기 의견으로 孔子시대에 여러 제자들이 언행을 撰記하여 각자 편을 이룩하였으니, 한사람의 손에 나온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대체로 󰡔漢書󰡕 「藝文志의 방향을 따르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끝머리 󰡔論語󰡕의 해설에서는 하이손의 말을 인용한 뒤에, 하이손의 설이 󰡔漢書󰡕 「藝文志의 설보다 낫다고 하고 있다. 이는 劉寶楠의 견해가 왔다갔다한 것이 아니라, 보는 방향에 따라 두 가지 설을 다 취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論語󰡕孔子와 그의 제자들이 토론한 말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지만, 후세에 그의 제자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차례 논찬을 하여 이룩하여 놓은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모아 가지고 논찬했다든지 논찬을 거친 후에 그것들을 실었다든지 하는 것으로 대체로 󰡔論語󰡕의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邪正을 가려내는 뜻으로 쓰인 말로 본 것이다. 󰡔論語󰡕 이외에도 孔子의 언행에 관한 기사는 󰡔禮記󰡕․󰡔左傳󰡕 같은 유가의 경전과 각종위서를 비롯하여 󰡔莊子󰡕․󰡔列子󰡕․󰡔呂氏春秋󰡕 등 제자서와 󰡔淮南子󰡕․󰡔說苑󰡕․󰡔新書󰡕 등 한대 제가서 등에 적지 않게 있다. 그러한 기사들은 말하자면 논찬을 겪지 않은 것들이어서 그 중에는 허황한 것들도 들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論語󰡕에 들어 있지 않은 孔子에 관한 기사도 여러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수집 정리작업도 행해졌다. 孫星衍集錄󰡔孔子集語󰡕 17권이 가장 잘 정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