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시대 1
공자는 기원전 약 500년경에 중국의 노나라에서 태어나 당시로서는 장수인 70여년을 살다 죽었다. 그러나 2500년이 지난 지금 까지 그의 탄생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공자라는 한 인간을 아직까지 기억하게 하는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공자 자신은 ‘나는 젊었을 때 미천했었다.’고 고백한다. 또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펴기 위해 벼슬을 줄 위정자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혹은 그의 사후 오랫동안) 그의 인생은 다소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고귀한 가문의 후예이며, 태어날 때 용과 천제의 사자들이 하늘을 배회했다고 한다. 그는 사물의 이치에 통달해서 방안에 앉아서 세상을 알았으며 처음 본 물건의 이름을 맞추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반면에 그는 세습적 귀족정치를 추구한 반동가라고 하는 의견도 있으며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추구한 개혁가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 또 그가 민중의 의견을 대신한 선각자라고도 하고 세습 귀족에 빌붙은 봉건주의자라고도 한다.
무엇이 이토록 공자라는 한 인간의 평가를 다양하고도 서로 상반되게 하는지 먼저 알아보아야만 그의 사상이나 모습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살던 시절은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였다. 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제후들은 틈만 나면 자신의 군주의 자리를 탐했다. 제후의 가신이나 가신의 가신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시시탐탐 침략했으며 점령한 나라도 제후나 가신들의 반란으로 유지할 수 없었다. 국가가 커지면 중앙에선 커진 국토를 다스리기 위해 신하를 봉건영주를 책봉했고 영주가 된 제후는 능력을 키워 이내 독립을 선언하며 자신의 군주를 쳐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 당하는 것은 서민들이었다. 법과 질서는 무너지고 지배 계층의 관심은 정벌이나 사치 뿐 이었으므로 서민들은 전쟁과 폭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공자는 이런 모순을 용납하지 못했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남에게 설득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지배자의 성공 여부를 권력이나 영토가 아닌 백성의 복리 증진 정도에 두었으며 이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불러 그를 유명한 교사로 만들었다.
공자는 또한 궁극적으로 세습 귀족을 타파하여 유능하고 백성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이를 빈천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관리로 임명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서민들의 교육 수준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는 젊은이들의 교육에 먼저 치중했다. 그렇지만 그는 직접 이런 세상이 오는 것을 보고 싶어했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 시켜 줄 군주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소원을 이룰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와 제자 교육에 몰두하다 곧 죽었다. 이후 그의 생각은 제자들에 의해 점차 널리 퍼졌으며 지배자가 덕과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관념과 정부의 목적이 백성의 행복 증진이라는 관념은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공자의 관념이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세력이 너무나 컷기 때문에 그들은 유가를 매수하거나 공자의 말이 적힌 책에 전제주의적 발언을 삽입함으로써 마치 공자도 자기네 편이었던 것처럼 조작을 했다.
이렇게 공자의 모습을 왜곡 시킨 것은 그의 반대파만은 아니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공자가 벼슬도 못하고 그렇게 꿈을 실현시키지도 못하고 그냥 죽었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따라서 공자를 유력한 정치가로 묘사하거나 귀족의 태생인 것처럼 꾸민 전기를 속속 내놓았다.
그렇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거짓과 참을 구분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유럽까지 전파되어 Leibniz, Wolff, Voltaire등 서양의 계몽주의 철학 이후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공자에 관한 전설에 관해서는 그 정확성이 오래 전부터 의심 받아 왔다. 공자에 관한 기록은 기원전 100년에 저술된 ‘史記’의 공자 세가에 근거를 두는 것인데 사건의 배열이나 인과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어 저자인 사마천의 악의 마저도 의심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어쨌든 공자의 전기에서 사실과 전설을 구별해 내는 일은 무척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서로 상반된 진술이 동일한 서적 안에서 발견되고 그것이 둘다 공자의 말이었다고 한다면 결국 공자는 2500년이나 인류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토록 오랜 기간을 인류가 속았을리 없고 당장 그의 제자들이 그런 이중적인 스승의 모습을 보고 옆에 붙어 있었을 리가 없다.
따라서 공자에 관한 자료 중에서 전설을 구별해 내는 일은 불가결 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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